![작업실의 박래현 작가. 1960년대 추상화 작업을 하던 시기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4abe430b-dd0a-44a5-84f5-49e35d8088f2.jpg)
작업실의 박래현 작가. 1960년대 추상화 작업을 하던 시기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 '작품', 1966~67, 종이에 채색, 169x135cm, 뮤지엄 산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ea1b8f75-7543-4464-a8f9-b5659a5f5ca8.jpg)
박래현, '작품', 1966~67, 종이에 채색, 169x135cm, 뮤지엄 산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래현 전
100년 전 태어난 여성 작가 재조명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138점 공개
"지금 보니 놀랍도록 현대적 미감"
1970년 판화 등 선구적 작업 주목
![박래현의 판화 '시간의 회상'(1970~73), 에칭, 50.5x38.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11256df5-d17c-4b2a-bd47-a410be948e1b.jpg)
박래현의 판화 '시간의 회상'(1970~73), 에칭, 50.5x38.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동안 우리는 박래현을 몰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 전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으로 우향(雨鄕) 박래현을 재조명하고 있다.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박래현의 성취를 차분하게 들춰 보인다. 전시작은 총 138점으로, 1985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10주기 전시 이후 35년 만의 대규모 전시다.
전시를 준비한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래현은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넘어 세계 화단과 교류할 수 있는 풍부한 작품 세계로 뚜렷한 성취를 이룬 작가"라며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를 '박래현'이라는 이름 대신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아내'라는 타이틀 안에 가두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가 박래현이 재평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00년 전 이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조선미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박래현은 평생의 반려자가 된 운보 김기창을 처음 만나 결혼한다. 어릴 때 장티푸스를 앓아 청력을 잃은 김기창은 이미 스타 작가였다. 당시 둘의 결혼은 도쿄 유학생이던 부잣집 딸과 장애를 극복한 청년 화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1947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3녀 1남을 두었다.
삶 자체가 끝없는 도전

박래현의 1943년작 '단장', 종이에 채색, 131x154.7cm. 개인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56년 국전 대통령상 수장작 '노점', 종이에 채색, 267x210cm. 박래현이 막내딸을 출산하고 네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완성한 작품이다.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4a393cfc-0246-43a0-accb-fc2738c33696.jpg)
1956년 국전 대통령상 수장작 '노점', 종이에 채색, 267x210cm. 박래현이 막내딸을 출산하고 네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완성한 작품이다.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56년 남편 김기창과 함께 그린 '봄C'. 종이에 채색, 167x248cm, 아라리오 컬렉션. 박래현이 나무를 그린 뒤 김기창이 참새를 그리고 글씨를 썼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c1280861-6e75-4d90-b2f0-01267da295cb.jpg)
1956년 남편 김기창과 함께 그린 '봄C'. 종이에 채색, 167x248cm, 아라리오 컬렉션. 박래현이 나무를 그린 뒤 김기창이 참새를 그리고 글씨를 썼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가사에 쫓겨 그림은 언제 그리나"
![박래현, '달밤', 1960년대 초, 종이에 채색, 76.5x59cm.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1644cf04-4de7-40b6-a66f-63768b44776a.jpg)
박래현, '달밤', 1960년대 초, 종이에 채색, 76.5x59cm.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 삼중 통역자'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ea816b2f-7725-40c2-a891-cb7863f36468.jpg)
'박래현, 삼중 통역자'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런 가운데서도 남편과 함께한 부부전과 백양회 회원전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1956년 부부전에 선보인 '봄C'는 남편과 함께 그린 그림이다. 박래현이 등나무를 먼저 그리고 김기창이 참새를 그리고 글을 쓴 것으로, "오래된 등나무의 둥치를 표현한 박래현의 힘찬 붓질"이 인상적이다. 1960년대 초 그린 부엉이 그림 '달밤'도 볼수록 빼어나다. 물감과 아교의 번짐 효과를 활용해 표현한 질감과 색조가 섬세하고 풍부해서다.
1964년과 1965년에 미국 순회 부부전을 열고 미국·유럽·아프리카를 돌면서 박래현은 본격적으로 추상화 작업에 몰두했다. 구불거리는 노란색 띠와 붉은색·검정색이 어우러지는 추상, 이른바 '맷방석 시리즈' '엽전 시리즈'라 불리는 작품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그중 1966~67년 작 '영광'은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으로, 빨강·황등색으로 표현되는 생명력과 동양화 특유의 먹물 번짐 기법이 결합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독보적인 여성 예술가 박래현
![박래현,Recollection, 190~73, 에칭, 애쿼틴트, 60.8x44cm.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수로간]](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0/3e6e2aeb-73a4-480a-aa7e-ad109842a51e.jpg)
박래현,Recollection, 190~73, 에칭, 애쿼틴트, 60.8x44cm.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수로간]
박래현은 왜 이토록 묻혀 있었던 것일까. 김 학예사는 "작가가 타계하고 40년이 지나도록 우리의 시선이 미처 박래현의 자취를 좇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박래현은 '운보의 아내'라는 위상이 너무도 단단해 그를 독립적인 작가로 들여다볼 여건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며 "이제야 우리가 박래현을 당당한 한 작가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갖춰진 우리 시대의 미적 안목과 젠더 감수성 덕분에 그를 온전한 작가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강민기 충북대 교수는 "박래현은 현대적인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연 화가였다. 이번 전시가 박래현의 눈부신 궤적을 더듬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이후 내년 1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순회전을 펼친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October 20, 2020 at 09:0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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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니 남편 그늘에 갇혔던 예술가 박래현이 보였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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