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에는 간절하게 한반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인물이 나오죠. 그리고 이미 한 번 탈출했는데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 인물이 있어요. 나가봤자 별것 없더라는 거죠."
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42)은 15일 개봉을 앞둔 '반도'의 주된 갈등을 이렇게 설명했다. 좀비가 점령해버린 '헬조선'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인물들이 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 반대편엔 앞서 홍콩으로 힘겹게 탈출하고서도 돈벌이를 위해 잠시 동안 들어오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홍콩에 거주하는 주인공 정석(강동원)은 좀비가 창궐한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다가, 250만달러(약 30억원)를 벌 기회에 삼엄한 경계를 뚫고 밀입국한다.
"정석은 홍콩에서 이 모양으로 사느니 한 번 모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들어오죠. 괜찮은 비전이 있는 건 아니었던 거예요. 반대로 반도에 갇힌 사람들은 탈출 기회가 한 번 보이니깐 거기에서 희망을 찾고요. 반도라는 제목이 주는 모순적인 느낌이 기획의 절반이었어요."
흉포한 631부대를 마주치며 정석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지만, 민정(이정현)네 가족을 만나 위기를 모면한다.
민정의 두 딸은 황폐한 땅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좀비가 가득한 곳에서 4년간 살아왔던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좀비가 굉장히 위협적이진 않겠죠. 일상이잖아요. 특히 아이는 적응을 빨리 해야 하잖아요.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아이가 발현하는 능력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인물들이 발견하는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 척박한 환경에 놓였지만 아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추억을 만드는 동안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간다. 연 감독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누구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연 감독은 스토리텔링을 향한 열정을 타고났다. 갓 스무 살에 'D의 과대망상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막 치료를 끝낸 환자가 보는 창밖풍경'이라는 애니메이션 내놨으며 2008년엔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다다쇼'를 설립했다.
그를 독립영화계 스타로 만든 애니메이션들은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로, 우중충한 색채에 염세주의적인 시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첫 실사영화 연출작이자 1000만 영화인 '부산행'(2016)을 연출한 이후 그의 작품엔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 묻어나게 됐다. 흥행 때문에 취향을 죽여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좋아하는 한편으로 '인디애나 존스'도 좋아했지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운이 좋은 창작자라고 생각하는 건 저의 다양한 취향을 전부 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부산행' '염력'과 같은 영화, 만화책 '얼굴'도 냈고, '지옥'이라는 책도 냈죠. 그렇기에 '부산행' 같은 대중영화를 만들 땐 '세상은 마땅히 이렇게 가야 한다'는 당위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는 시대와의 공명을 고민하겠는 건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초기작을 구상할 때 염두에 뒀던 가상의 관객이 '연상호'였다면, 지금은 어머니, 길거리의 행인 등 보다 다양한 얼굴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부산행'이 갑자기 뜬 건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공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기획부터 내놓기까지의 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2년 후 관객이 무엇에 공명할지 예측하는 게 쉽지 않아요. '반도'를 만드는 시점에도 2~3년 후 어떤 관객이 있을지 시그널을 읽어내느라 힘들었어요. 대중의 관심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늘 생각합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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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0, 2020 at 03:0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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