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42)은 15일 개봉을 앞둔 `반도`의 주된 갈등을 이렇게 설명했다. 좀비가 점령해버린 `헬조선`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인물들이 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 반대편엔 앞서 홍콩으로 힘겹게 탈출하고서도 돈벌이를 위해 잠시 동안 들어오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홍콩에 거주하는 주인공 정석(강동원)은 좀비가 창궐한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다가, 250만달러(약 30억원)를 벌 기회에 삼엄한 경계를 뚫고 밀입국한다.
"정석은 홍콩에서 이 모양으로 사느니 한 번 모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들어오죠. 괜찮은 비전이 있는 건 아니었던 거예요. 반대로 반도에 갇힌 사람들은 탈출 기회가 한 번 보이니깐 거기에서 희망을 찾고요. 반도라는 제목이 주는 모순적인 느낌이 기획의 절반이었어요."
흉포한 631부대를 마주치며 정석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지만, 민정(이정현)네 가족을 만나 위기를 모면한다.
연 감독은 스토리텔링을 향한 열정을 타고났다. 갓 스무 살에 `D의 과대망상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막 치료를 끝낸 환자가 보는 창밖풍경`이라는 애니메이션 내놨으며 2008년엔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다다쇼`를 설립했다. 그를 독립영화계 스타로 만든 애니메이션들은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로, 우중충한 색채에 염세주의적인 시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첫 실사영화 연출작이자 1000만 영화인 `부산행`(2016)을 연출한 이후 그의 작품엔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 묻어나게 됐다. 흥행 때문에 취향을 죽여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좋아하는 한편으로 `인디애나 존스`도 좋아했지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운이 좋은 창작자라고 생각하는 건 저의 다양한 취향을 전부 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부산행` `염력`과 같은 영화, 만화책 `얼굴`도 냈고, `지옥`이라는 책도 냈죠. 그렇기에 `부산행` 같은 대중영화를 만들 땐 `세상은 마땅히 이렇게 가야 한다`는 당위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는 시대와의 공명을 고민하겠는 건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초기작을 구상할 때 염두에 뒀던 가상의 관객이 `연상호`였다면, 지금은 어머니, 길거리의 행인 등 보다 다양한 얼굴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부산행`이 갑자기 뜬 건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공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기획부터 내놓기까지의 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2년 후 관객이 무엇에 공명할지 예측하는 게 쉽지 않아요. `반도`를 만드는 시점에도 2~3년 후 어떤 관객이 있을지 시그널을 읽어내느라 힘들었어요. 대중의 관심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늘 생각합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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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0, 2020 at 03:0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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